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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한산도 망산봉수대, 청동기부터 근대까지 군사시설로 활용

<사진> 망산봉수대 전경
<사진> 망산봉수대 전경

문화재청(청장 나선화)의 허가를 받아 (재)경상문화재연구원(원장 노태섭)이 조사 중인 통영 한산도 망산봉수대를 발굴한 결과, 청동기 시대 해안 제사유적과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통제사로 있던 당시 한산도 삼도수군통제영이 관할했던 봉수대 시설, 러일전쟁과 관련 있는 신호소 유적 등이 확인됐다.

이번 발굴조사는 문화재청이 (사)한국매장문화재협회(회장 조상기)를 통해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비지정' 매장문화재의 학술적 가치를 규명하기 위한 학술조사 사업의 일환이었다.

통영 한산도 봉수대는 한산도의 정상인 해발고도 293.5m의 망산(望山)에 있는데 임진왜란과 관련 있다는 사실만 알려졌을 뿐 체계적인 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그동안은 성격이 모호한 상태였다.

이번에 망산 정상부에 있는 봉수대의 내부를 조사했으며, 이 안에서 간돌검(청동기 시대 대표 석기) 1점이 들어있는 수혈(竪穴, 구덩이)을 찾아냈다.

이 수혈은 부안 계화도유적, 여수 세구지유적, 서천 옥북리유적 등과 같이 풍어와 해상의 안전을 기원하는 의식이 이뤄진 청동기 시대 해상 제사유적으로, 지금껏 발견된 사례가 드물다.

망산의 정상부에 축조된 연조(불을 피워 연기나 횃불을 올리던 굴뚝)는 기반암을 凹자형으로 굴착해 만든 수혈식이며 평면 형태는 원형이다.

조선 시대 봉수체계는 5개의 연조로 이뤄진 신호체계를 갖추고 있는데 현재 4개소가 확인됐기 때문에 앞으로 1개소가 더 나올 가능성이 높으며, 당시 봉수의 신호체계를 밝히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그동안 한산도 망산봉수대는 정확한 문헌기록이 없어 주민의 전언 등을 통해 한산도 옛 진영인 통제영이 설치됐던 시기에 운영됐던 봉수대로 알려졌으나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임진왜란 당시 실전에 사용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한편, 봉수대 내에서는 러일전쟁과 관련된 신호소도 확인됐다.

'신호소'란 해상감시, 선박과 교신, 기상관측, 인접 신호소, 통신소와 연락을 하는 곳이다. 신호소 내부에서는 당시 일본 규격의 붉은 벽돌과 석탄, 일본자기 완(碗), 시세이도사 제품인 크림치약 용기 등이 나왔다.

벽체와 지붕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1904년 2월 러일전쟁이 발발한 뒤 일본 군부가 봉수대 관련 시설을 신호소로 급조해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한산도 망산봉수대는 한 장소에서 청동기 시대 제사유적, 조선 시대 봉수의 핵심시설, 러일전쟁 시 일본 군부가 사용한 신호소 유적이 골고루 확인돼 한반도 주요 군사시설의 상징적인 장소로서 역사적·지리적·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으로 평가된다.

통영 한산도 망산봉수대 발굴조사 성과는 27일 오후 2시에 공개되는 발굴현장(경상남도 통영시 한산면 두억리 산243)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화재청은 앞으로도 비지정 매장문화재 발굴조사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을 통해 학술적·역사적 가치를 지닌 유적들이 체계적으로 보존·관리될 수 있도록 힘써 나갈 계획이다.
(끝)

출처 : 문화재청 보도자료

본 콘텐츠는 제공처의 후원을 받아 게재한 PR보도자료입니다.
[2017-04-27일 11:05]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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